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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 소통

누구나 다 아는 5·18 진실, 그들은 왜 부정하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2-26 15:42
조회
234
5·18 민주화운동이 국회에서 ‘광주 폭동’ ‘괴물 집단’으로 폄훼되었다. ‘역사부정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이들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져봤다.

고립되어 마땅한 말이 온라인에 고이더니 거리로 쏟아졌다. 마침내 입법기관인 국회 안에서 떵떵거리는 말이 되었다. 2월8일 극우 논객 지만원씨는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열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 주최자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이종명 의원에 의해 ‘광주 폭동’으로, 5·18 유공자는 김순례 의원에 의해 ‘괴물 집단’으로 규정되었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도태되어야 할 역사 왜곡과 선동이 국회 문턱을 넘어온 건 이 문제가 다른 차원의 해결이 필요한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국회의원의 말은 그 자체로 공적 성격을 띠고 사안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입법 방향을 설정한다. 자유한국당은 공청회가 문제되자 “다양한 의견 존재가 보수 정당의 생명력이다”(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나경원 원내대표)라는 발언으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2월11일 ‘5월 단체’들은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 천막을 치고 항의에 나섰다(24~25쪽 딸린 기사 참조). 결국 공청회 나흘 만인 2월12일 김병준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뒷북 수습에 나섰다. 이날 김 위원장은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지난 39년간 여러 차례 국가기관 조사를 통해 근거가 없음이 확인된 ‘5·18 북한군 개입설’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보수를 넘어 국민을 욕보이는 행위다. 특히 공당의 국회의원이 이런 주장에 판을 깔아주는 행동도 용인돼서는 안 된다.”

김 위원장은 관리 책임 소홀을 이유로 당 중앙윤리위원회(윤리위)에 스스로 징계를 요청했고, 공청회를 주최하고 참석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역시 윤리위에 회부됐다. 2월14일 윤리위는 김병준 위원장에게 ‘주의’를, 이종명 의원에게는 ‘제명’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각각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해서는 2월27일 전당대회 이후로 징계를 유예했다. 두 의원이 차기 지도부가 될 경우 징계는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지도부에 입성하지 못하더라도 여론의 관심에서 비껴나기 위해 ‘시간 벌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 끈질기게 되풀이

자유한국당은 예정대로라면 2018년 9월 출범했어야 할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 조사위)의 발목도 잡고 있다. 지난해 2월 국회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5·18 진상규명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인권유린과 발포 책임자 등을 밝히기 위한 조사위를 꾸리기로 했다. 하지만 국회의장 1명, 여당과 야당이 각 4명씩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조사위원 중 자유한국당 추천 몫 3명 중 2명이 아직 공석이다.

1월14일 자유한국당은 조사위원 3명을 늑장 추천했지만, 2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 중 2명(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권태오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대해 자격요건 미달을 이유로 재추천을 요청했다. 사실상 임명 거부였다. 5·18 진상규명법 제7조는 법조·역사·법의학·인권 등 관련 각 분야에서 5년 이상 재직·종사한 자를 조사위원 자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청회로 논란의 중심에 선 김진태·이종명 의원은 지난 1월 5·18 조사위 조사위원 후보로 지만원씨를 추천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종명 의원은 5·18 진상규명법 통과 당시 진상규명 범위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사건’(제3조 6항)을 넣을 것을 관철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번 공청회를 국회에서 열 수 있었던 것도 이 조항 덕분이었다. 2월13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 등 21명은 관련 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을 발의했다.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법정기념일로 지정되고 제도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지만원씨를 필두로 이를 폄훼하는 세력 역시 꾸준히 있어왔다. 가장 ‘끈질긴’ 주장은 당시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이다. 지씨는 2002년 8월 16대 대선을 앞두고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라는 제목의 신문 광고를 통해 관련 주장을 시작했다. 지씨의 ‘외로운’ 싸움을 뒷받침한 건 2011년 개국한 종편 채널들이었다. 2013년 채널A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북한군이라고 주장하는 탈북자 인터뷰를 ‘방송사 최초’ 타이틀로 내보냈다. TV조선 역시 비슷한 시기 북한 특수부대 장교 출신이라 주장하는 사람을 내세워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중징계와 사과방송이 뒤따랐지만 관련 방송을 캡처한 이미지가 온라인에 북한군 개입의 ‘근거’로 퍼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북한군 개입설’은 야당에서마저 배척당하는 이슈였다. 5·18 진상규명법 이전에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모두 7차례 국가 차원의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1980년 사건 직후 계엄사 발표, 1985년 국방부 재조사, 1988년 국회 ‘5공 비리 진상규명 청문회’(일명 광주 청문회), 1995년 검찰 및 국방부 조사, 1996~1997년의 5·18 재판,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2012년 국정원의 비공개 조사가 이뤄졌지만 당시 북한군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증거나 정황은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서청원 의원(무소속)은 2월11일 입장문을 내고 “600명의 북한군이 육로로 왔단 말인가, 해상으로 왔겠는가. 그런 일을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해당 의원들의 사과를 요구했다. 역시 광주 현장을 취재했던 보수 논객 조갑제씨도 북한군 개입설을 제기하는 세력을 향해 꾸준히 자성을 촉구해왔다. 조씨는 2월10일 ‘조갑제닷컴’에 ‘이종명 의원실로 보낸 편지(1월28일)’를 공개하기도 했다. 조씨는 국회 공청회 토론 참가 요청을 거절하며 “자칫 잘못하면 북한군을 신출귀몰한 군대로 치켜세우고 국군을 바보로 만드는 자해 행위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국회 공청회 논란 이후 2월12일 국방부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국방부는 2013년 5월30일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밝히며 ‘군의 입장’이라는 공식 문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홍원 전 국무총리 역시 2013년 6월10일 국회에 출석해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답했다.

2017년 1월 비밀 해제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비밀 문건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1980년 5월9일자, 6월6일자 문건에는 각각 “현재 북한은 한국의 정치 불안 상황을 빌미로 어떤 군사행동도 취할 기미가 없다” “북한은 남한의 사태에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특정 행동이 자칫 전두환의 합리화를 위한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결국 전두환을 돕는 행위라는 것을 직시하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정작 북한군 개입설에 다시 불을 붙인 건 전두환씨였다. 전두환씨는 2017년 4월 출판된 회고록을 통해 지만원씨의 북한군 개입 주장을 전폭적으로 인용한다. 불과 1년 전인 2016년 6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전두환씨와 부인 이순자씨는 북한군 침투설이 금시초문이며 “지만원의 주장을 연희동과 연결시키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이 이 같은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공청회 논란 직후 세 의원은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다. 사과하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5·18 유공자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법적 판단’이 이뤄진 부분이다. 2018년 12월2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김용철)는 ‘5·18 유공자 명단 및 유공 내용 공개촉구 국민연합’ 대표 등 102명이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기각하며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 사유는 정보공개법 비공개 대상정보 세부기준(제9조 1항 6호)에 따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관련 정보는 사망이나 행방불명 경위, 부상이나 장해(障害) 정도, 치료 내역이나 기간, 죄명과 복역 기간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그 자체로 개인의 내밀한 정보라고 봤다. 또 같은 이유로 보훈 대상자·고엽제 후유증 환자 등 다른 국가유공자 명단도 대부분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단, 독립유공자의 경우 공적을 기록·보존하고 연구할 목적으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2조 6호)에 따라 1986년부터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당 대표 선거에 나선 오세훈 후보 역시 명단 공개에 힘을 실었다. 2월12일 오 후보는 ‘가짜 유공자’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세 의원의 문제 제기가 합리적이라고 옹호했다. 이는 지만원씨가 주장하는 “5·18 유공자 수가 광주시장의 재량으로 마구 늘어난다”라는 말과 궤를 같이한다. 지씨는 또 “5·18 유공자 자식들이 공무원 7급의 89.4%, 9급의 85.6%를 독차지했으며 법원 검찰 서기의 95%가 그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일각의 우려처럼 정말 ‘가짜 유공자’가 있을 수도 있다. 2018년 12월18일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5·18 계엄군 가운데 73명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됐고 그중 56명은 심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송 의원에 따르면 73명이 수령한 보상금과 연금은 모두 164억2300만원으로 한 사람당 평균 약 2억2400만원이 지급됐다. 일반 유공자는 한 사람당 평균 약 4300만원을 보상받았다. 송 의원은 5·18 당시 첫 총기 진압 당사자로 알려진 차 아무개 대위를 비롯해 계엄군 30여 명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는 사실도 함께 밝혔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1990년 8월6일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보상법)이 제정되며 관련 법 개정을 거쳐 7차에 걸쳐 보상받은 인원은 2018년 12월 현재 5807명이다. 이 중 70%가량이 1993년 이전에 보상이 인정됐다. 5·18 유공자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에 따라 보상을 받은 자여야 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5·18 민주유공자는 작년 말 기준 4415명이다. 7차 개정 당시 보상 신청 기한을 2015년 6월까지로 한정했다. 보상자 중 약 1400명 가까이 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8차 법 개정을 하지 않는 한 앞으로 신규 등록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상심의원회 위원 15명은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광주시장과 국무총리가 임명하거나 위촉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공무원 채용 시 가점을 부여하지만 이는 5·18 유공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유공자에게 주어진다. 공직을 ‘싹쓸이’할 만한 규모도 아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17년 7·9급 공무원 시험 합격자(5826명) 가운데 가점 대상 국가유공자는 2.2% (132명)이며 그중에서도 5·18 유공자는 9명(0.15%)에 불과했다.

역사부정을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2월13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5·18 망언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 규제 가능성 논의에 앞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선동의 문제점을 짚었다. 한 교수는 5·18 역사부정 행위를 “타락한 보수 세력의 생존 전략”으로 정의하며 군사정권과 그 대체 정권 후계자들의 위기감이 투영된 ‘혐오 정치’의 한 형태라고 정의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지역주의와 반공주의를 덧씌워 현재로 호출하는 정치인들은 ‘태극기 부대’로 집단화된 일부 대중을 민주적 시민이 아닌 동원·공작·선동의 대상으로 놓고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한다. 이는 단순한 역사왜곡을 넘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형법적 규제의 필요성 역시 긴급히 요청된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김재윤 전남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인을 ‘권위주의적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집단 살해와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인 ‘역사적 사실의 부인’ 관점에서 보았으며, 독일 형법의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 규정(제130조 3항과 4항)을 이에 적극 대처하는 대표적인 예로 소개했다(26쪽 딸린 기사 참조).

한국도 포괄적이나마 명예훼손(형법 제307조 1항)으로 역사부정을 처벌할 수 있다. 적어도 관련해 8건 이상의 소송을 치렀거나 치르고 있는 지만원씨 역시 2003년과 2013년 각각 명예훼손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확정받았지만, 2012년에는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김 교수는 “당시 대법원은 명예훼손은 맞지만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는가에 대해 개개인이 특정될 수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집단 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난점이다”라고 말했다. 이 판결 이후 지씨의 ‘망언’ 역시 날개를 달았다.

현재 국회에는 ‘5·18을 부인·왜곡·날조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삽입한 5·18 진상규명법 일부 개정안 4건이 계류 중이다. 김 교수는 한번 법을 만들면 개정하기 어려운 점을 우려하면서도 관련 법에 예술·학문, 연구·학설 등에 기여하는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위법성 조각 사유’를 삽입해서 보완할 것을 제안했다.

토론회 패널로 참여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역사부정에 대한 논점을 ‘역사적 진실이 중요하다’라는 거시 관점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피해’와 ‘소수자 차별로서의 혐오 표현’으로 좁혀서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역사부정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현재성이 충분히 입증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와 그 후손만이 아니라 역사부정 대상이 되었던 인구집단 전체, 즉 뿌리 깊은 지역감정이 호남 차별과 연계돼 있으며 그 경험이 현재진행형임을 주목했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금지법에 앞서 역사부정법이 제정되는 것이 적절한지도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유럽 역시 혐오 표현 금지가 먼저였고, 혐오 표현의 한 형태인 역사부정을 별도로 처벌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역사부정죄가 마련됐다.

법 제정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홍 교수는 “법을 통해 역사부정 행위를 일망타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보다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만은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주고, 이를 바탕으로 형사처벌 외 여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인 /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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