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 보호 못받는 공익신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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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9-07-09 09:3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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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인사 불이익.. 신상 노출에 협박해도 징역형 '0' /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 / 불이익 받아도 인과관계 증명 어려워 / 부당 전보조치 인정돼도 벌금 30만원 / "누가 위험 감수하면서 신고할지 의문" / 까다로운 신고 요건 / 횡령·성폭력 등 형법상 범죄 해당 안돼 / 언론 제보도 불인정.. 일부 기관만 유효 / 전문가 "대리신고 확대·처벌 강화 시급"

#1. KT 직원 이해관(56)씨는 2012년 2월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KT가 ‘제주 7대 자연경관선정 투표’에서 국내전화를 국제전화로 속여 부당이익을 취했다”고 폭로했다. 그해 3월 이씨는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고 출퇴근만 5시간 30분가량 걸리는 경기도 가평 지사로 전보조치됐다. 그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했고, 보호조치를 받았지만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이씨는 2016년 1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복직됐지만 KT는 이씨에게 감봉 1개월을 내렸다. 이후 권익위 권고로 감봉 결정은 취소됐다. 이씨는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며 “집요하게 보복조치를 한 경우엔 가중처벌이 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2. “선생님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 몇 명 있다는데 실명을 공개해 보시죠?” 2015년 8월 서울시의회에서 하나고 입시 비리와 학교폭력 은폐 의혹 등을 밝힌 교사 전경원(48)씨가 공익신고 이후 받은 이메일 내용이다. 재단 쪽 교사들은 내부망에 “평생 공익신고나 하며 살아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는 1년 동안 혼자 도시락을 먹었고 2016년 10월 해임됐다. 이후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거쳐 2017년 3월 복직했다. 전씨는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익신고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2011년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탄생했지만 위반해도 처벌이 약할 뿐 아니라 공익신고자로 인정되는 일조차 까다로워 실효성이 낮다. 많은 공익신고자가 공익신고했던 일을 후회하는 이유다. 실효성 있는 보호를 위해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처벌을 강화하고, 공익신고자 인정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해도 징역형 無…벌금 30만원 내기도

8일 세계일보가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도입된 2011년부터 올해까지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이루어진 1심 판결문 9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징역형을 받은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7건은 30만∼500만원의 벌금형, 1건은 무죄, 1건은 면소(공소가 부적당해 소송절차를 종결시키는 재판)였다. 이 중 2건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모두 기각돼 1심 판결이 확정됐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에 대한 회사의 불이익이 공익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뤄진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30조에 따르면 공익신고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조 과정에서 부정의약품을 사용한다는 공익신고를 한 회사 직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줘 기소된 회사 대표 A씨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이 인정돼 지난 5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심 법원은 “A씨가 공익신고자에게 전보조치라는 불이익조치를 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공익신고가 원인이라는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공익신고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사례도 있었다. 2017년 5∼6월 회사 대표 B씨는 공익신고자에게 “신상정보가 전부 노출됐네요. 인생사 사필귀정입니다.” 등의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듬해 3월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B씨에게 “피고인이 공익신고자에게 심리적 불안, 초조, 공포 등의 정신적 손상을 가져왔다”면서도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이날 대법원에 따르면, 2014∼2018년 전국 지방법원(1심)에서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된 6명 중 5명이 벌금형에 그쳤다. 법령에서 규정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없었다.

재판조차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는 더 많다. 이날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19년 5월까지 검찰에서 처리된 95건 가운데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으로 정식재판이 청구된 건은 한 건도 없었다. 약식명령 청구도 7건뿐이다. 불기소 처분이 79건으로 대부분이다. 서초동 15년차 변호사는 “공익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줘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공익신고를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배임·횡령·성폭력 신고하면 공익신고자 아니다?…까다로운 공익신고 기준

공익신고자로 인정받기도 까다롭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2조에 따르면 공익신고자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 이익 등을 침해한 행위로 공익신고 대상 284개의 법률 또는 행정처분 대상이 되는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한 사람을 뜻한다. 법률에는 형법은 빠져 배임과 횡령, 성폭력 등 형법상의 범죄행위를 신고하는 경우에는 공익신고자로 보호받을 수 없다.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하는 법률은 2011년 법 제정 당시 180개에서 2016년 279개, 지난해 284개로 확대됐다. 2015년 사학비리를 공익신고했던 전씨도 당시 사립학교법은 180개 법률에 포함되지 않아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처음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정 당시 대상법률로 검토된 것이 460여개”라며 “거기엔 아직 못 미치는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국회 계류 중인 법안 등이 통과된다면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 제출된 공익신고자 관련 법안은 45건에 달한다. 이 중 28건은 계류 중으로 대부분이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하는 법률을 늘리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 6월 국회에 제출된 ‘공익신고자 보호법 일부개정안’ 정부안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법률 39개를 더해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하는 법률을 323개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권익위 등 정해진 기관에 신고해야만 공익신고자로 인정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우리나라가 공익신고자 인정이 까다롭다”며 “언론 등에 제보하면 (공익신고자로) 인정이 안 된다”면서 “권익위와 수사기관, 감사원 등 정해진 곳에 신고했을 때만 공익신고가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처벌은 중하게, 신고는 쉽게 해야”

전문가들은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인정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상석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법에선 5년 이하 징역까지 처할 수 있다고 돼 있더라도 실제로 집행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냐”며 “죄질이 나쁜 경우 엄벌을 처해 함부로 공익신고자에게 불이익조치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에 대한 양형이 너무 낮다”며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노출해서 위험에 처하게 했는데 벌금 200만원만 선고된다면 누가 공익신고를 하겠냐”고 비판했다.

공익신고를 할 수 있는 창구를 늘려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공익신고 접수기관은 권익위와 수사기관, 국회의원 등으로 한정됐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 제보하는 것은 공익신고로 인정되지 않아 권익위의 보호조치를 받을 수 없다. 2012년 KT의 자연경관선정 투표 조작을 공익신고한 이씨는 “방송을 통해 공익신고를 했지만 공익신고자로 인정받기 위해 권익위에 다시 정식접수를 했다”고 말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신설된 제도가 ‘비실명 대리신고’다. 공익신고자가 자신의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고 변호사를 선임해 공익신고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지문 이사장은 “공익신고 활성화를 위해 변호사뿐 아니라 시민단체나 언론 등을 통해 하는 대리신고까지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익위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익위에 따르면 권익위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공익신고자 보호를 위해 총 4건을 형사고발했다. 2000년부터 공익신고 관련 활동을 해온 이상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변호사)은 “지금까지 권익위가 보호조치를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지만 고발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라며 “(정부가) 신고자가 겪어야 할 어려움을 좀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외의 공익신고 보호법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보다 폭넓게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고 있다.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는 뜻의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1998년 만들어진 영국 ‘공익신고법(Public Interest Disclosure Act)’에 따르면 신고자는 진실 여부를 직접 증명할 필요가 없고, 신고 자체만으로 보호를 받는다. 이때 공익침해행위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정 법률이 아닌 포괄적으로 적용된다. 또 공익신고자가 현직에 몸담고 있다면 신고 내용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소속기관은 어떤 불이익도 줄 수 없도록 강제한다.

미국은 1989년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최초로 제정했다. 이 법은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 신고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불이익조치와 공익신고의 상관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소속기관에 지게 한다. 또 2012년 공익신고자보호증진법을 만들어 공익신고로 인한 불이익조치를 폭넓게 인정했다. 예를 들어 신고자가 불이익을 받았을 경우, 이것이 공익신고에 따른 보복이라는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부당한 처우로 인정된다. 뿐만 아니라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복성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했다. 보복으로 인해 신고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등 보복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캐나다는 부패행위를 신고하고 보복으로부터 보호와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공직자 신고 보호법원’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독립된 사법 체계 속에서 내부고발자 보호와 함께 부패행위에 대해 신속하게 판결을 내린다. 프랑스는 2016년 이후 부정부패방지 관련법을 상원에서 통과시키는 등 내부공익신고자의 보호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신고자의 직장생활 보호를 위해 노동자는 신고를 이유로 채용·연수·직업훈련 절차에서 배제되거나 직간접적 차별과 해고 등 모든 불리한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만약 사측이 신고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할 경우, 모두 무효가 된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고인 측이 차별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고, 공익신고자는 입증책임이 없다.

유럽연합은 2018년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내부 고발로 페이스북 고객 정보가 대량 유출되는 사태를 계기로 공익신고자 보호를 강화했다. 개정된 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내부 정보를 공개한 근로자의 해고나 직위 해제 등을 막고, 기업이 계약 위반이나 비공개 규정 위반으로 공익신고자를 고소하는 일을 막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2006년부터 ‘공익통보자보호법’을 시행한 일본은 약 450개 법률 위반행위가 공익침해행위로 인정된다. 우리나라와 달리 언론과 소비자단체 등에 신고해도 공익신고로 인정받는다.

세계일보 / 유지혜·염유섭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