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이해승 재산환수 소송 패소···“매국 가성비가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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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9-07-0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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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138필지 중 1필지만 반환 판결···사실상 정부 패소
정철승 변호사 “친일 후손이 안온한 생활 누리는 게 정의로운가”

“대한민국은 매국의 가성비가 좋은 나라다. 매국해서 잘되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못 돼도 본전이다. 조국을 되찾으려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을 뵐 낯이 없다.”

지난 26일 서울고등법원은 정부가 거물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친일재산환수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는 충북 괴산의 땅 1필지(4㎡)와 이미 처분한 부동산 매각 대금 3억5000만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외면상 원고인 정부가 일부 승소했지만, 정부가 반환을 요구한 이 회장 소유의 땅이 총 138필지(약 200만㎡)인 점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정부가 패소한 판결이다.

판결 이후 정철승 변호사(법무법인 더펌)는 “매국의 가성비가 좋은 나라”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이 사건 보조참가인인 독립운동가 단체 ‘광복회’의 소송대리인이다.

정 변호사는 또 “친일 후손의 재산을 환수하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왜적의 앞잡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잘 되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안되더라도 되면 본전인 결과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2심 선고가 5번이나 연기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원래 이 사건 선고는 지난 1월 9일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총 5차례 연기됐다. 매우 이례적이다. 법원은 첫 기일부터 ‘1심과 달리 더 주장하실 내용이 없지요’라며 사건을 일찍 종결하려고 했다. 법원은 법리 검토 후 바로 판결을 선고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사건이 가지는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며 추가변론기일을 요구했다. 재판과정에서 재판부가 한차례 변경되는 일도 있었다. 선고가 계속 지연되는 것을 보고 재판장과 배석판사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짐작해보기도 했다.

이 사건이 갖는 역사적·사회적 의미가 무엇인가?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독립운동가가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일제에 맞서 항거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멸문지화를 당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 나라의 민중들이 일제에 재산과 신체를 수탈당했지만, 이러한 국가의 암흑기를 이해승 같은 반역자들은 막대한 부귀와 권세를 누리는 기회로 삼았다.

반면, 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생명과 재산을 모두 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 애국자들의 후손들은 해방 후 7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가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온전히 교육조차 받지 못해 남루하고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 그 후손 중 누구도 독립운동에 몸 바친 선조들이나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은 나라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부와 권세를 누리던 반역자들이 해방 후에도 여전히 호의호식하며 오히려 더욱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국가의 정의를 세우는 일은 사법부의 신성한 사명이다. 사법부가 마땅히 선언해야 하는 준엄한 역사의 정의를 외면하면 안 된다.

이 사건의 쟁점은 무엇이었나?

이 사건은 증거나 법리 가지고 싸울 사건이 아니다. 법률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해승이 친일행각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인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친일재산은 국가가 몰수한다는 대원칙이 있는데, 피고 측은 법의 미비점을 파고들었다. 법 조문상 불분명한 내용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해석론으로 충분히 정의로운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법원은 사유재산이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당한 매매나 거래를 통해 제 3자에게 재산이 넘어갔다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사건 재산은 친일파의 후손이 여전히 그 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재산이 그들이 안온한 생활을 누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면 당연히 찾아오는 게 정의에 맞다.

사실상 원고 패소판결이 나왔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1심에 이어 항소심인 서울고법까지 친일파 후손의 손을 들어줬다. 거물 친일파는 단죄되지 않는다는 70여년 전 반민특위의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참담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친일재산귀속법과 그 개정법률의 취지가 친일파 후손들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 아닐 텐데 재판부는 얼마든지 합리적인 해석을 통해 입법 취지와 역사적 정의를 살리는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전한 양식과 정의관에 반하는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산화하신 수많은 순국선열께 고개를 들 수 없는 참괴한 판결이 내려져서 참으로 개탄스럽다.

최종심인 대법원이 국가와 사회의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워주길 간곡히 호소한다.

◇ 정부, 행정·민사소송 패소···민사는 개정법 ‘부칙’이 발목 잡아

이 사건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는 등 친일재산귀속법이 정한 명백한 ‘친일파’라고 판단하고 손자인 이우영씨가 상속받은 192개 필지를 국가가 귀속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필지는 시가 300억여원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친일재산귀속법상 환수 대상자가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를 한 자”로 규정된 점이 화근이 됐다. 이씨는 조부인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후작작위를 받은 것은 맞지만, ‘한일합병의 공’이 아닌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 받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행위 자체가 한일합병 또는 일제가 나라를 빼앗은데 기여한 공으로 볼 수 있다”며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2010년 5월 2심은 이해승이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게 아니라며 재산환수가 위법이라고 봤다. 같은 해 10월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이 판결을 확정했다.

판결 이후 국회가 법 개정에 나섰다. 국회는 친일재산귀속법에서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불과 몇 개월만에 개정이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그런데 개정 과정에서 부칙에 ‘다만,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법 개정 이후 정부는 이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이번에는 부칙이 걸림돌이 됐다. 지난해 4월 1심은 “법이 개정됐어도 확정 판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정부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번에 환수된 1필지는 2010년 대법원 판결에 포함되지 않은 땅이다.

시사저널e / 주재한 기자(jjh@sisajourna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