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용훈 500만달러 계좌에서 전형적인 자금세탁 수법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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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9-05-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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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춘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김영수 이스트우드컴퍼니 CEO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대표의 손위 동서
처제 이미란씨 죽음 진실 밝히기 앞장
"조선일보 힘의 기반은 막연한 두려움"

방 대표 쪽과 캐나다 법원서 민사소송
"처제 죽음 몰고 간 돈의 실체 밝힐 터
한국 사회가 규명 못하는 건 부끄러워"

지난 3월 방송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은 2016년 발생한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대표의 부인 이미란씨의 자살 사건을 사회적으로 크게 환기했다. 고 이미란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육성, 친정 식구들의 절절한 토로, 검찰과 경찰의 납득할 수 없는 수사, <피디수첩> 쪽에 대한 방 대표의 위압적인 태도를 보며 시청자들은 놀랐다. 고인의 친정 식구들과 주변인들이 주장하는 방 대표와 자녀들의 믿기 힘든 언행은 필연적으로 ‘왜’라는 물음을 불러낸다.

<한겨레>가 고 이미란씨의 형부이자 방 대표 손위 동서인 김영수씨를 만난 것도 그 이유를 유추해보려는 의도가 컸다. 그는 처제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서부터 검경 고소, 법정 싸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퍼즐 조각을 그가 얼마나 채워줄지는 예단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간단치 않은 이력이 얼마간 기대를 갖게 한 것은 사실이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김영수씨는 캐나다에 본사를 둔 굴지의 바이오 메디컬 및 금융투자 기업 ‘이스트우드 컴퍼니’의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다. 창업 전에는 일본 도요타자동차 부사장 등을 지냈다. 대만국립대 경제학 석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박사이며, 캐나다 앨버타대 금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유학 가기 전에는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와 상공부, 청와대에서 공직자로 일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학렬씨가 그의 부친이다.

지난 1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방송 스튜디오에서 <한겨레 티브이(TV)>와 함께 그를 만났다.

- 사건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됐나?

“고인에 대한 두 자녀의 강요죄 사건이 2심에 가 있다. 두달 전쯤 피고인 쪽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는데 아직 공판 기일도 잡히지 않고 있다. 1심에서는 둘 다 유죄(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를 받았다. 재판 진행을 봐가면서 공범인 방용훈씨와 나머지 두 자녀에 대한 추가 고소 여부도 결정할 것이다.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겠다.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방송 나가고 나서 민갑룡 경찰청장이 국회에 출석해 서울 용산경찰서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했는데. (방 대표와 그의 큰아들이 새벽에 등산용 도끼 등을 들고 김씨 부부가 자는 서울 한남동 집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린 사건이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전 과정이 찍혀 있으나, 용산서와 서울서부지검은 무혐의(방 대표)와 불기소(큰아들)로 처리했다가, 김씨 부부가 서울고검에 항고해 재기수사명령이 내려오자 그제야 두 사람 모두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다.)

“아직 아무 연락도 없다. 시시티브이 보면 다 나오는데 조사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나. 어떤 사람이 주먹으로 다른 사람 턱을 가격한 걸 두고 ‘턱으로 주먹을 가격했다’고 한 거나 다름없다. 진실을 덮은 정도가 아니라 뒤집어 놓은 것이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 용산경찰서에 방용훈 대표 일가의 집사 노릇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 인물을 짚을 수 있나?

“한명이 아니다. 서너명 있다. 그 집 사람들은 용산서를 자기네 마당으로 생각했다.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쳤는데, 그 뒤를 봐주고 승진한 사람도 있다. 경찰이 조사하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실명을) 밝힐 수 있다.”

- 서울 수서경찰서가 공동존속상해 혐의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강요죄로 바꿔서 기소했다. (강요죄는 공동존속상해죄보다 형량이 낮다.)

“공동존속상해죄도 석연찮다. 자식들이 계속해서 ‘엄마가 없어져야 한다’ ‘나가 죽어야 한다’고 했고, 유서에도 그것이 자살 동기로 나와 있다.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고인이 원래 심각한 우울증 상태였다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분명한 살인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학대 폭력을 가해 자살하면 살인죄로 처벌하는 판례도 있다. 그런데 검찰에서는 상해조차 아니라고 한 것이다. 제보에 따르면 흉기를 사용했고, 엄마의 온몸에 상처를 입히고 피멍이 들게 해서 내쫓았다. 그것이 공동존속상해가 아니라면 (고인의) 자율적 상해라는 뜻인가. 머리 좋은 분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굉장한 법적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감히 ‘조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씨의 얘기는 뜻밖의 주장으로 넘어갔다. 검찰에서 한동안 고인의 몸에 난 상처가 방 대표 가족이 아닌 김씨의 아내이자 고인의 언니에 의한 것이라는 쪽으로 조사를 몰아갔다는 주장이었다.

“우리가 고소했는데 조사는 거꾸로 우리를 향했다. 분위기부터 굉장히 위압적이었다. 조사를 받는 내 처에게 ‘가만 놔둬보라’고 조언했다. 조사가 그쪽으로 한참 진행되고서야 내 처가 ‘당시 (한국에 있지 않고) 캐나다에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이 크게 당황하더라. 그것 때문에 검찰이 강요죄로라도 기소한 거라고 본다.”

- 검경이 왜 그랬다고 보나?

“조선일보가 검경 인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 북에서 내려온 간첩도 알고 있을 거다.(방용훈 대표는 방상훈 조선일보사 대표이사의 친동생이자 이 신문사의 4대 주주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걸 우려하기도 한다. <한겨레>가 지금 내 말을 인용 보도해서 문제가 생기면 나를 다시 불러달라.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인사 개입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겠다.”

- 조선일보의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나?

“조선일보가 힘이 세다고 하는 믿음 자체가 조선일보의 권력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도 죄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만 많아져도 그런 믿음은 깨질 거라고 본다. 처제가 이혼하려고 변호사들 찾아다녔는데, 다들 손사래를 쳤다. 심지어 상담 사실도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조선일보라고 재판 못 걸 게 뭐가 있나. 변호사들이 자신도 기득권 상류층에 속해 있고, 조선일보를 무서워하는 것이 자기 위상에 맞는 행동규범이라고 막연히 믿는 것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과대망상이다.”

- 단순한 동서지간 이상으로 조선일보 사주 집안에 대해 소상히 아는 것 같다.

“사실 부모 대부터 양쪽 집안이 잘 알고 지냈다. 조선일보가 코리아나호텔 지을 때 얻은 차관도 아버지(김학렬 전 경제부총리)가 도와준 거다. 방용훈씨와 처제의 혼담도 어머니가 주선했다. 혼담 때 ‘조선일보 집안 사람들은 권세가 없지만 친절하고 겸손해서 적이 없으니 풍파를 맞지 않을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런 사람들이 5공화국 지나면서 목에 굉장히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건에 경악할 뿐 사건의 본질을 쉬이 가늠하지 못한다.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 해도 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단 건지 고개를 갸웃한다.

“(방용훈·이미란 부부의) 아이 넷이 모두 미국에서 유학했는데, 그게 정상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학비와 생활비, 입학기부금 같은 거 빼고도 온갖 사고 뒷수습까지 거액이 들어갔다. 자살하기 몇달 전 남편과 자식들이 (이미란씨에게) 돈을 빼돌렸다고 추궁하자, 그런 사실(사고 뒷수습 등에 거액이 들어간 사실)을 아이들한테 알렸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아버지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처제에게 몹쓸 짓을 시작한 것 같다. 방용훈씨는 아이들에게 ‘그 돈이 너희들에게 물려줄 유일한 재산’이라며 (엄마에 대한) 잔인함으로 상속 자격을 입증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안다.”

그는 ‘재벌 세대론’으로 넓혀서 설명을 이어갔다.

“산업화 시대의 재벌 1세들은 성실했고, 권력에 아부했고, 직원과 경쟁자와 채권자에게 더없이 잔인했다. 그걸 보고 자란 2세대는 잔인해야 하고, 아부해야 한다는 것만 내면화했다. 3세대에 이르러서는 잔인해야 한다는 것만 남았다. 한편 할아버지는 신화적 존재가 돼 있다 보니 자기 집안 전체를 신화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실제로 ‘평민’이라 부른다. 그런데 과거보다 총수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크게 떨어지다 보니 재산 상속에 과도하게 몰입한다. 그래서 3세대 이후는 정체성 혼란이 심각하고 감정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하다.”

- 듣고 보니 근래 끊이지 않는 재벌가 젊은 자녀들의 잔인하고도 엽기적인 일탈이 제법 설득력 있게 설명된다.

“우리 사건을 검경이 덮었느냐 안 덮었느냐 정도의 차원을 넘어서 경각심을 갖고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봐야 한다. 이런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필연적이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엽기적인 일을 저지른 사회 일원을 처벌하고 격리하는 정화 능력이 없다면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돈인 셈인가? 그러고 보니 <피디수첩> 방송 뒤 방용훈 대표 쪽에서 ‘고인의 언니가 500만달러를 빼돌려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취지가 포함된 입장문을 냈다. 그 돈은 무슨 돈인가?

“2000년쯤에 방용훈씨가 내겐 비밀로 하라며 내 처에게 돈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고인이 숨지기 석달 전쯤에 처제가 하소연을 해와서 그 사실을 처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 돈의 일부가 아이들 사고 뒷수습에도 쓰인 것이다. 지난해 6월 방씨 쪽에서 돈을 돌려달라며 내 아내를 상대로 캐나다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장모도 피고에 추가했다. 그래서 그 돈이 어디에서 들어와서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추적해봤다. 결과적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 그게 무슨 뜻인가?

“나는 금융으로 박사 학위 받은 사람이다. 돈의 흐름을 통해 돈의 성격을 파악하는 건 내 전공이다. 500만달러가 일본인 여성 이름 등 몇 사람 이름으로 서너차례 나뉘어 캐나다의 내 처와 장모 등의 몇개 계좌로 들어왔다. 그런 다음 70개 안팎의 계좌로 쪼개지고 그 안에서 빙빙 돌더니 아이들 학비와 사고처리비 등으로 상당히 쓰였고, 또 상당 액수는 훨씬 더 큰 규모로 돌다가 어디론가 흘러갔다. 한눈에 봐도 자금세탁 수법의 전형적인 특징이 다 들어 있었다. 그쪽에서 소송을 낸 건 우리에게 불감청 고소원이고, 천재일우가 됐다.”

- 그건 또 무슨 뜻인가?

“그 돈의 성격을 대략 파악하고 나서 같은 법원에 반소를 제기했다. 그쪽에서 채권을 회수하겠다며 처제에게 범죄적인 강압과 폭력, 학대를 행사한 셈이니 이에 대해 고인의 가족으로서 징벌적인 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이제 그쪽에서 소를 취하하고 싶어도 우리가 취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됐다. 앞으로 캐나다 법원에서 문제의 돈의 성격부터 출처까지 다 증언해야 할 것이다. 캐나다 법원은 위증이나 증인 협박, 자금세탁, 탈세를 무섭게 처벌한다. 문제의 계좌들과 돈의 흐름도 다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심각한 형사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조선일보가 한국에서처럼 캐나다 사법당국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는가.”

김영수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조선일보 사주 집안이 모여서 이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가족회의를 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캐나다에서 해결하는 건 한국 태생인 나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 소송과 별개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나?

“이 사건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도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검경 관계자들이 했던 일까지 다 포함해 사건 전 과정을 매우 공들여 기록하려고 한다. 몇십년이 지나도 누구든 이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게 하고 싶다.”

방용훈 법률대리인 “항소심 진행 중이라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

‘캐나다 소송’은 지난해 6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대표이사의 큰아들이 엄마 고 이미란씨의 언니이자 이모를 상대로 500만달러를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캐나다 법원에 내면서 시작됐다. <한겨레>가 입수한 소장을 보면, 고소인은 그 돈이 1999년 아버지 방용훈 대표가 자신을 위해 신탁을 걸고 어머니와 이모를 신탁관리자로 지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영수씨 쪽은 그런 신탁을 설정한 사실 자체가 없고, 실제로 방 대표 가족들이 그 돈을 많이 썼으며, 돈을 내놓으라고 폭행과 학대를 해서 고인이 자살하게 됐다는 내용으로 지난해 12월 반소를 냈다. 아직 본격적인 재판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방용훈 대표의 법률대리인에게 캐나다 소송과 500만달러의 출처와 성격 등에 대해 물었다. 이에 법률대리인은 “현지 변호사를 통해서 진행되는 연유로 자세한 진행 사항에 대하여는 알지 못한다. 본 사건(강요죄)은 항소심이 계속 중인 연유로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항들에 대하여는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법률대리인은 <피디수첩> 방송 직후 낸 입장문과 <한겨레>에 보낸 답변서 등을 통해, 고인의 몸에 난 상처는 “자녀들이 아닌 구급대원들에 의한 이송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고인에 대한 강요와 폭행 의혹을 부정했다. 방 대표 쪽은 입장문에서 <피디수첩>에 반론보도문을 청구하겠다고 밝혔으나,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 확인한 결과 아직 <피디수첩>을 상대로 어떤 절차도 진행하지는 않고 있다.

한겨레신문 /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