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美 정보요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 방문, 사살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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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9-05-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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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육군 501 정보여단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던 김용장씨가 13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집단발포 1시간 전 광주를 찾아 사살명령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기자회견을 통해 "전두환씨는 1980년 5월21일 정오께 헬기를 타고 K57 광주비행장에 왔다. 오자마자 비행단장실에서 약 1시간 회의를 열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를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당시 전씨와 정호영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부대장 등 4명이 회의를 했다. 회의가 이뤄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고 밝혔다. 이어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른다. 21일 오후 1시 집단 사살이 이뤄진 정황으로 미뤄 전씨가 사살을 명령하려고 광주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서 사살 명령이 전달됐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발포 명령'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발포와 사살은 완전히 다르다. 발포는 방어 차원에서 대응하는 개념"이라는 지적이다. 25년간 정보요원으로 재직한 김씨는 첩보 40건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 가운데 5건이 백악관으로 보내졌으며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3건을 직접 확인했다고 소개했다.

허장환 전 국군보안사령부 특명부장도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해 "그 사격을 제가 직접 목도했다. 앉아쏴 자세의 사격은 절대 자의적 구사(발포)가 아니었다. 그건 사살이다. 전두환은 사살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증언했다.

실제 11공수여단은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에서 집회를 열던 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 집단 발포했다. 계엄군은 당시 비무장 상태의 시민에게 조준 사격을 했다. 최소 시민 54명 이상이 숨지는 등 550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김씨가 당시 미 상부에 보고한 내용 가운데에는 시민군으로 섞여든 남한특수원, 편의대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됐다. 김씨는 "일명 편의대라 불리고 시민 행세를 하던 사법군인들이 실제 존재했다. 5월20일께 K57 비행장에 30~40명이 성남비행장에서 수송기를 타고 왔다고 보고했다"며 "첩보를 입수한 이후 격납고로 찾아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씨에 따르면 이들은 20~30대로 구성됐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일부는 엉성한 가발을 쓰고 있었다. 그 중에는 거지행세를 위해 넝마를 걸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추론을 전제로 "당시 방화, 총격, 군수송차량 탈취는 일반 시민이 했다고 보기 어려운 행위였다"며 "남한 특수군이 시민들을 선봉에서 유도했거나 직접 벌인 소행으로 추정된다.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든 후 강경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부가 고도공작을 펼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우익단체가 주장하는 '북한군 침투설'에 대해서는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한반도 상공에는 2대의 군사첩보 위성이 떠있었고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했다"며 "북한군 600명이 미군의 첨단 감시망을 피해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북한군 침투설은 터무니없는 사실이라 보고거리조차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북한군 600명이 광주로 오기 위해서는 적어도 30척의 잠수정이 필요한데 당시 북한은 그 정도의 잠수정을 보유하지도 못했다는 설명이다.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