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회사 통해 삼성 해외법인에 천억 원대 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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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9-03-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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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돈세탁과 사기사건 등에 연루된 역외 유령회사 계좌에서 천억 원 가량이 삼성전자 네덜란드 법인(Samsung Electronics Overseas B.V., 이하 SEO)으로 유입된 사실이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 네트워크 OCCRP의 공조취재 결과 확인됐다.

루마니아에 본부를 둔 OCCRP(Organized Crime and Corruption Reporting Project), 즉 조직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와 리투아니아 매체 15min은 국제 돈세탁 거점 은행으로 악명 높은 리투아니아 유키오 은행(Ūkio bankas)의 입출금 내역을 등을 무더기로 입수했다. 유키오 은행은 돈세탁 등 수상한 거래에 관여한 혐의로 지난 2013년 리투아니아 당국에 의해 폐쇄된 곳이다.

뉴스타파가 이 유출자료를 분석한 결과, SEO는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유키오 은행 계좌에서 SEO 명의의 씨티은행 런던지점 계좌로 모두 9천 3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천억 원이 넘는 돈을 입금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SEO에 돈을 보낸 회사는 대표적인 조세도피처로 꼽히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 파나마, 벨리즈, 영국 등에 설립된 유령회사로, 모두 유키오 은행의 계좌를 사용했다.

유키오 통해 삼성에 송금한 회사들, 국제 돈세탁에 연루된 유령회사

SEO에 돈을 보낸 회사들은 대부분 국제 돈세탁과 사기사건 등에 연루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SEO에 가장 많은 금액인 372억원을 보낸 애스터홀 인베스트 리미티드(Asterhol Invest Limited)는 벨리즈에 설립된 회사다. 지난 2013년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갈등으로까지 비화됐던 러시아 자금세탁 사건(United States of America v. Prevezon Holdings Ltd. et al)에 등장한다. 해당 사건에 연루된 또 다른 업체들인 알베이스톤 매니지먼트 리미티드(Alveyston Management Limited)와 돈캐스터 리미티드(Doncaster Ltd)도 SEO에 돈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뉴질랜드에 설립됐다가 2011년 폐쇄된 임팔라 트랜스 리미티드(Impala Trans Limited)는 SEO에 170만 달러, 우리돈 19억 원 가량을 보냈다. 이 업체의 설립 에이전시인 GT Group은 지난 2009년 태국에서 적발된 북한의 대이란 무기밀매에 사용된 에스피 트레이딩(SP Trading)이라는 회사도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SEO에 73억 원을 보낸 영국의 머저 비즈니스(Merger Business LLP)의 설립 에이전시인 에이원 컴퍼니 서비시즈 리미티드(A1 Company Services Limited)는 최근 미국 뮬러 특별검사에 의해 기소된 트럼프 선대본부장 출신 폴 매너포트가 자금세탁에 활용한 유령회사들을 설립해 준 것으로 확인됐다. 머저 비즈니스의 등록 주소지인 영국 런던의 788-790 Finchley Road에는 4만 4천 건이 넘는 기업과 개인이 등록돼 있다.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인 것이다.

수상한 청구서, 석연찮은 해명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 머저 비즈니스 앞으로 SEO가 청구한 물품대금명세서에서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것으로 보이는 서명을 발견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삼성의 가전제품 판매대금을 청구하는 이 청구서들이 작성된 시점은 2009년으로, 당시는 윤 전 부회장이 삼성전자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나 삼성전자 상임고문으로 재직하던 시기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서명이 나온 SEO 청구서

취재진은 해당 서명을 윤 전 부회장 측에 전달하고 윤 전 부회장의 것이 맞는지 물었다. 윤 전 부회장 측은 해당 서명이 “본인 서명이 확실히 아니고, 왜 여기에 이런 서명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윤 전 부회장 서명이 있는 청구서는 모두 3건이 확인됐다. 취재진은 이 청구서대로 실제 대금 지급이 이뤄졌는지 유키오 은행 거래 내역 기록에서 확인해봤다. 2009년 6월 18일자 청구서의 28만 달러는 나흘 뒤인 6월 22일에, 2009년 10월 11일자 청구서의 30만 달러는 9일 뒤인 10월 20일에, 그리고 2009년 11월 12일자 청구서의 44만 달러는 나흘 뒤인 11월 16일에 머저 비즈니스(Merger Business LLP)의 유키오 은행 계좌에서 SEO의 씨티은행 런던지부 계좌로 이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 전 부회장의 말대로라면 위조된 서명이 기재된 청구서이지만 그 내역대로 실제 자금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다른 청구서에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됐다. 2009년 8월 10일과 2009년 11월 18일에 각각 작성된 두 건의 SEO 청구서는 제품 모델명, 수량, 단가까지 모두 똑같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전체 청구 금액은 무려 10만 달러나 차이가 난다.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든 청구서이지만, 두 청구서에 기재된 액수 그대로가 SEO의 씨티은행 계좌에 송금됐다.

이 두 청구서엔 모두 이민규라는 이름의 서명이 있다. 확인 결과 이민규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SEO 법인장을 지낸 이민규 삼성전자 자문역으로 확인됐다. 이민규 서명이 있는 청구서 10건은 모두 이 전 법인장이 SEO에 재직하던 시기에 작성됐다.

이 전 법인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SEO 법인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거래선들이 자기네들 마음대로 (청구서를) 작성해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면서도 실제 본인 서명이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답을 줄 만한 게 못 될 것 같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후 취재진은 이 전 법인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이 전 법인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취재진은 네덜란드 SEO에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하기 위해 SEO 대표전화번호로 공개돼 있는 전화번호로 SEO에 연락했다. 전화를 받은 언론담당자는 “현재로서는 SEO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다"며 “문의한 내용에 대해 확인해본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답변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취재 : 김용진, 임보영
촬영 : 최형석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디자인 :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