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아버지? 전두환의 민주주의 전복 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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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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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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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속 긁어놓는 '이순자판 골목성명'

새해 벽두부터 전두환씨 부인 이순자씨가 국민들의 심기를 뒤집어놨다. 1월 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인 전두환씨의 재판을 앞두고, 작심한 듯 불만을 털어놨다. 1월 1일자 <뉴스타운>과 가진 대담 형식 인터뷰에서, 그는 숱한 망언을 쏟아냈다.

"정말 하늘이 원망스럽고 그렇습니다. 왜 저분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왜 저분에게 기억의 문제를 야기시켜서, 조금 전의 일을 기억 못하고,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말씀을 드려도 금방 잊어버리시는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실, 그런 사람한테 광주에 내려와서 80년대에 일어난 이야기를 증언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일종의 코미디입니다."

남편의 사고 능력에 문제(알츠하이머)가 있다면서, 그런 사람을 광주까지 불러 재판을 연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세상의 핍박을 받는 위치에 있다고도 말했다.

"제가 40년 당하면서 느낀 것은, 힘없는 사람은 어떠한 대접을 받아도 좋은 구경거리로 보는 세상인 것 같다는 겁니다. 그냥 뭐, 잡아가면 잡혀가야죠."

40년간 당했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너무나 자신만만했다. 잡아갈 테면 잡아가보라는 식이었다.

1995년 전두환의 말, 2019년 이순자의 말

24년 전 그때도 겨울이었다. 1995년 12월 1일 검찰 소환장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은, 다음 날인 12월 2일 자기 집 앞에서 그 유명한 '골목성명'을 발표했다.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한 뒤, 그는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버렸다. 이 성명에서 전두환은 역사인식의 문제를 거론했다. 김영삼 정권의 과거사 청산을 이렇게 비판했다.

"다음으로, 현 정부의 통치이념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 정부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 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운동 방향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과거 청산을 무리하게 앞세워 이승만 정권을 친일정부로, 3공화국·5공화국·6공화국은 내란에 의한 범죄 집단으로 규정하며, 과거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이념적 투명성을 걱정하는 국민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김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히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전두환은 김영삼 정권을 상대로 역사관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역사 앞에서 나름 당당했던 것이다.

이런 당당함이 이번 이순자 인터뷰에도 드러났다. 24년 전에는 검찰 소환에 앞서 남편이 성명을 발표해 국민들을 격분시키더니, 이번에는 법원 소환에 앞서 부인이 인터뷰로 국민들의 속을 긁어놨다. 가히 '이순자판 골목성명'이라 할 만했다. 24년 전에 남편이 역사관을 드러낸 것처럼, 이번 인터뷰에서 이순자는 매우 자신만만하게 자기 역사관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순자는 남편 재임 중에 한국의 국운이 융성했다면서 "(제 남편은) 길이 추앙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예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 다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순자는 진짜 그렇게 믿는 것처럼 말했다.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까, 그렇게 말할 만한 이유가 진짜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인터뷰 서두에서 그는 "(작금의 상황이) 저한테는 일종의 코미디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민주주의 아버지론'도 일종의 코미디였다.

그는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이유 중 하나로 직선제 개헌을 들었다. "(국민들이) 직선제 해야 민주주의라고 해서 (우리 남편이) 직선제 해주"었다고 말했다. 마치 전두환이 국민들을 위해 직선제를 '해준' 것처럼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 거짓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이다. 전두환(재임 1980~1988)과 임기가 거의 겹치는 레이건(재임 1981~1989)이 '이순자판 골목성명'을 듣는다면, 코웃음과 탄식을 동시에 터트릴 듯하다. 레이건만큼 전두환을 잘 아는 외국 대통령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직선제를 해줬다? 레이건이 탄식할 말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직선제 개헌 요구는 국민의 뜻이었고, 재야 운동권과 야당이 이 뜻을 받들었다. 하지만 전두환은 직선제를 거부했다. 그는 직선제를 '해준' 게 아니라 '거부'한 사람이었다. 1987년 4.13 호헌 조치가 그 증거다.

호헌 조치는 대통령선거인(대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하는 1980년 헌법을 개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당시, 이것은 민주화 요구를 거부하는 조치로 해석됐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이순자가 떠받든 사람은 실상 민주화 요구를 부했다.

국민들이 호헌 조치를 거부하고 민주화 투쟁을 이어나가면서 6월항쟁을 발전시키자, 전두환은 심지어 군대 동원까지 고려했다. 1987년 6월 19일 전두환은 이한기 국무총리서리(국회 동의 안 거친 총리)를 통한 특별담화를 통해 "법과 질서의 회복이 불가능해진다면, 정부로서는 불가피하게 비상한 각오를 할 수밖에 없다"라며 국민들을 위협했다. 직선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군대로 진압할 생각을 품었던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런 상황 전개에 두려움을 품었다. 미국 정부는 한국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무서웠다. 한국 군대가 시위 진압에 나서면, 미국이 묵인했거나 조종했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한국민들의 미움을 사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나올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한기 서리가 담화문을 발표한 날, 레이건 대통령은 제임스 릴리 주한미국대사를 통해 전두환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그 해 7월 5일 자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친서에는 '시위 대처에서 자제력을 발휘하고, 반대세력과 대화하라'는 등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군을 동원하지 말라는 경고였던 셈이다.

경찰력으로 진압하기 힘들 정도로 국민들이 궐기한 상황에서 미국이 군대 동원에 제동을 걸었으니 전두환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직선제 수용뿐이었다. 이래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는데도, 이순자는 남편이 국민들을 위해 직선제를 해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치켜세웠다. 레이건이 들으면 탄식할 일이다.

단임제가 전두환의 업적? 국민적 대세였다

이순자가 제시한 '민주주의의 아버지 전두환'의 또 다른 근거는 7년 단임제 개헌이다. 자기 남편이 7년 단임제의 전통을 만들었기 때문에, 장기 집권의 전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거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을 이룬 것. 그 덕분에 지금 대통령들이 5년만 되면 착착,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잖아요."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1980년, 우리 국민들은 장기집권이란 것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에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 장기집권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국민적 대세였다. 전두환과 함께 1979년 12.12 쿠데타 및 1980년 5.17 쿠데타(불법적 계엄확대 조치)를 합작한 신군부 내에서도 단임제 개헌이 대세였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단임제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는데도, 이순자는 모든 게 남편 덕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국민들은 장기집권은 싫어해도 직선제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런 국민적 요구를 무시한 채 전두환은 간선제를 관철시켰다. 정당한 절차를 밟기는커녕 불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데 이어 국민들이 안 좋아하는 간선제까지 관철시킨 상황에서, 전두환이 연임제에까지 욕심을 내기는 힘들었다.

또 간선제가 정통성이 약했기 때문에, 그런 간선제로 뽑힌 대통령에게 연임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힘들었다. 미국 같은 나라는 간선제를 하면서도 1차 연임을 인정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부득이 단임제를 하되, 기간을 길게 해서 7년 임기제로 했던 것이다.

2017년 <헌법학 연구> 제23권 제4호에 실린 '제5공화국 헌법의 성립과 정부헌법개정 활동'이란 논문에서 이병규 동의과학대학교 교수는 "간선제를 채택했을 때 그 보완책으로 제시한 것이 5~7년의 단임제와 (대통령의) 당적 이탈"이라고 짚었다. 당시 정치상황에서 간선제를 택할 경우, 단임제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순자의 말처럼 전두환의 결단 때문에 단임제 개헌이 이뤄진 게 아니다.

미국의 의심... "권력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조짐"

그런데 대통령이 된 전두환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에는 심각한 의심이 깔려 있었다. 전두환이 7년 단임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한 것은 7년 단임제를 고수할 생각에서가 아니라 간선제를 고수할 생각에서였다. 만약 국민들이 고분고분하게 있었다면, 7년 단임제를 뒤엎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이런 판단을 내린 곳이 있다. 전두환을 가장 많이 관찰했던 주한미국대사관이다.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으로서 1986년부터 3년간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는 동아시아 근무 경험을 담은 <중국통>(China hands)이라는 회고록에서 전두환의 위험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8년 임기가 끝나면 평화롭게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공언을 해왔지만, 자신의 권력을 쉽게 양보하지 않으려는 조짐을 보였다. 일부 국민들의 커지는 불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권력을 장악할 때처럼 무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전두환이 군대를 동원해 7년 단임 약속을 폐기할 가능성을 미국이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상황 전개가 이랬음에도 이순자는 "남편이 단임제를 확립시켰기에 후임자들이 단임제 약속을 착착 지키고 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새해 벽두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이순자의 거짓 망언은 2019년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두환의 주변에서 전두환을 칭송하는 망언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 그 시대의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직 한국에는 유신 적폐, 박근혜 적폐뿐 아니라 5공 적폐도 살아있다.

오마이뉴스 / 글: 김종성(qqqkim2000), 편집: 김지현(diedie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