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해도 돈만 내면 그만?…재벌 총수, 대부분 집행유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13 09:28
조회
77
조세범 실형 비율 17%, 대기업 총수 '솜방망이' 처벌
국세청 범칙조사 강화·검찰 적극적 수사 의지 필요
조세범 양형기준 개선도 이뤄져야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에게 세금을 낼 것을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납세자는 헌법에 따라 성실히 납세의무를 지고 있고, 최근 과세 당국은 성실납세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세무조사 등 제도를 납세자를 위한 방향으로 개선하는 추세다.

하지만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일부 고소득자들의 경우 거액의 탈세를 저지르고도 실형을 받는 비중이 극히 저조해 조세범 처벌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조세일보가 최근 10년 동안 조세포탈 혐의 등(기업범죄 포함)으로 기소된 13명의 대기업 총수 및 임원의 판결을 조사한 결과 실형이 내려져 법정 구속된 기업 회장은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 한 명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강 회장은 170억 원대의 조세포탈, 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에 벌금 130억 원을 선고받고 구속됐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강 회장을 제외하고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들은 건강상태가 고려돼 불구속되거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1500억 원대의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명예회장은 지난 5일 항소심 선고에서 징역 3년에 벌금 1352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고령과 건강상태 등으로 구속을 면했다. 신 총괄회장 역시 지난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법원은 건강 상태를 고려해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이 회장도 마찬가지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돼 구속됐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6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놨다.

나머지 대기업 총수들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더라도 상급심에서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가장 최근에는 74억 원 상당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조세포탈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돼 벌금 1억 원이 확정됐다.

4000억 원대 탈세·횡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도 지난 7월 20억 원의 보석금을 법원에 내고 건강상 이유로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허수영 롯데그룹 화학부문 사장(전 롯데케미칼 사장) 역시 지난해 11월 270억 원대의 세금을 부정하게 환급받은 혐의(특가법상 조세)에 대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논란이 됐다. 당시 재판부는 "분식회계에 대한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허위 장부를 근거로 법인세 등을 돌려받은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해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다.

이밖에도 2200억 원 상당을 역외 탈세한 혐의를 받은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도 1심에서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이 대폭 감형돼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되는 등 대다수 기업 총수들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처럼 고액 조세범의 소극적인 형사처벌에 대해 조세범 수사에 대한 의지와 국세청 범칙조사의 보완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올해 발표한 '조세범에 대한 처벌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8년~2017년) 조세범에 대한 검찰의 기소율은 평균 23.1%로 전체 형사범의 평균 기소율(39.1%)에 비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청에서 최근 10년간 조세범죄로 처분을 받은 인원은 총 11만여 명이지만 이 중 기소된 인원은 2만5000여 명으로 22%에 불과했다.

특히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위반한 고액 조세범죄 사건(연간 30억 원 이상)의 기소율은 평균 21.8%로 일반 '조세범 처벌법' 위반 사건(연간 5억 원 이상)의 기소율 23.3%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고처분을 받거나 소재 불명으로 기소 중지된 피의자 등 일부 '허수'가 존재한다고 해도 재판에서 실형을 받는 비율은 다른 형사사건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검찰에 의해 기소가 되더라도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비중은 절반 이하 수준으로 매우 저조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조세범에 대해 1심 법원의 판결 중 집행유예 비율이 47.2%(7609명)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재산형이 32.5%(5241명)로 조사됐고, 실형인 징역형을 받는 비중은 16.9%(2724명)에 불과했다.

최근 5년간 법원이 조세범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선고하는 비중이 76% 증가해 조세범에 대해 법원이 더욱 관대한 판결을 내린 셈이다.

조세범은 다른 형사범에 비해 유죄판결률은 높은 편이나, 자유형이 선고되는 경우 실형 비중이 작고 집행유예 비중이 높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조세범은 다른 형사범에 비해 유죄판결률은 높은 편이나, 자유형이 선고되는 경우 실형 비중이 작고 집행유예 비중이 높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조세범에 대한 처벌 현황 및 개선방안'

2008년~2012년까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134명이었으나 2013년~2017년 사이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인원은 237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보고서는 다른 형사범(89.2%)에 비해 조세범(97.2%)의 유죄판결률은 높았지만, 실형의 비중이 작고 집행유예 비중이 높은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문은희 입법조사관은 "조세범은 대다수 고액 탈세자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법률 개선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고, 고소득자는 당사자여서 개혁 입법을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조세범 처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전제될 때 건전한 납세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세범 처벌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세청에 조세범칙조사 전담 조직을 만들어 과세관청의 수사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더불어 형사처벌 단계에서는 조세포탈죄의 양형기준체계를 개선하고, 미수범 처벌규정을 도입해 처벌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양근복 변호사(법무법인 주원) 또한 "검찰에서 처리하는 전체 형사사건에서 조세범이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며 "실제 수사과정에서 검사가 조세범의 반사회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실체 파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서도 "조세범의 경우 다른 형사범에 비해 집행유예 비율이 높은 것이 현실이므로 유죄가 인정되는 피고인에 대해선 지금보다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 "동종 범죄전력이 없는 경우가 많은 조세범에 대해 초범이라는 이유로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은 국민 법감정과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세일보 / 홍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