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롤링페이퍼-40대] “세월호는 마음의 빚…부디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4-12 19:25
조회
80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둘째 딸 유예은 양을 잃은 아버지 유경근씨는 언젠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한 추모 미사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했습니다.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고 우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가장 큰 위로는 잊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잊지 않는다는 것, 그건 기억하는 것이요 기록하는 것일 겁니다. 1년 뒤에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2년 뒤, 3년 뒤, 10년 뒤, 100년 뒤에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하는 길이라 저희는 믿습니다.

세계일보는 이에 세월호 4년을 맞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세월호 이야기를 최대한 채록하거나 인터뷰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지지를 부탁합니다.

*자신만이 기억하는 세월호 이야기나 기억, 관련 자료가 있다면 세계일보로 사연이나 자료를 보내주십시오.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독자 모두와 공유하겠습니다.
보내실 이메일은 kimgija@segye.com 또는 homospiritus1969@gmail.com, 전화 번호 02-2000-1181.

◆“잊지 말아야…사람 우선 사회 될 때까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박주민(44)=“세월호 참사 당시 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처장이었다. 그날도 서울 서초구에 있는 민변 사무실로 출근해 평상시처럼 일하고 있었다. 아마 조금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처음 세월호 사고를 알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뉴스를 보고 놀란 마음은 얼마 뒤 ‘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보고 안심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조금 더 깊게 보고 피부로 와닿게 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많은 분들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원인과 배경을 설명했지만 그런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생명·안전보다 이윤을 먼저 추구하는, 그런 세태가 낳는 위험을 국가는 적절히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러나 국가는 오히려 부패했다. 부패한 인사와 결탁하며 무능력해졌다.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세월호 참사 원인도 완전히 밝혀졌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잊지 않고 고쳐나가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사람이 우선이고 안전한 사회가 될 때까지.”

◆“지금도 노란 리본 달아…왜 구조 못했나”

방사선사 문철홍(45)=“여느 날과 같았다. 병원에 출근해 책상 정리를 하고 무심코 옆 환자 대기실에 켜진 TV를 봤는데 세월호 사고가 났다는 긴급속보가 나왔다.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는 내용을 보고 자식 가진 부모인지라 TV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했다. ‘전원 구조’라는 속보에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보라는 소식이 들리더라.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생존자 숫자는 그대로인데 사망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환자분들 입에서도 저마다 짧은 탄성이 나왔다. ‘오메, 먼 일(무슨 일)이다냐?’ ‘아이들은....’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내 마음도 이런데 유가족분들은 오죽하겠나. 배는 기울어 완전히 가라앉고 덩그러니 부표 하나만 놓여있을 때는 절망감과 상실감으로 무기력해졌다. ‘에어포켓’이라는 희망을 부여잡았지만 끝내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이제 세월호 4주기다. 지금도 왼쪽 가슴 한편에 세월호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일을 한다. MRI실에 들어갈 때면 쇠로 된 배지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느낌이다. 꽃다운 어린 학생들이 차디찬 바닷물에서 엄마·아빠를 부르며 죽어갔을 생각만 하면 4년이 지난 지금도 울컥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도 기억은 선명해진다. 아마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해본다. 그날 배가 출항하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된 위기관리 메뉴얼과 대응 능력이 있었더라면... TV 속 책임자들은 사실을 숨기고 국민을 안심시키기 바빴다. 적절한 대응보다는 이미지 관리가 최우선이었다. 그 시각 세월호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인생이 없어지고 있었다. 세월호는 흘러간 세월만큼 없어진 게 아니다. 그 세월만큼 커져 잊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목포 신항에 갔다. 옆으로 누운 세월호 앞 철책에 수없이 많은 노란 리본이 붉은 노을을 배경삼아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며칠 전 요양병원의 화재, 목욕탕 화재로 또 많은 사람이 죽었다. 대한민국의 위기관리 체계를 만들고 메뉴얼화하자는 세월호 사고 당시의 말들이 무색할 정도다. 다양한 재해, 재난사고에 대한 메뉴얼을 만들고 담당자들은 항상 대비하는 자세를 갖춰 또다시 세월호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아울러 지방자치 분권을 이뤄 사고가 일어난 시점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끔 해야한다. 안전이라는 것은 설사 사고가 일어난다 해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 마음의 빚이자 숙제”

기록정보 활동가 전진한(45, 알권리연구소 소장)=“‘전원구조’. 세월호 당일, 난 ‘가짜 뉴스’를 믿고 있었다. 시민단체 소장이었지만 저 소식을 믿고 태연하게 점심 약속을 잡았다. 오후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참사 발생 다음 날부터 우리 단체는 모든 업무를 중지하고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4년 동안 내게 세월호는 마음의 빚이자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나는 세월호 특조위 3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은 30년 동안 봉인할 수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니라고 진술했다. 당시 분노하던 유가족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이해관계에 찌든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 줬다. 우리는 살아남은 자로서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바로잡아야할 것이다.”

◆“배 기울자 정신 나가...공정사회 구현에 최선을”

시민단체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집행위원 조용래(49)=“백화점에 캐시미어 니트 등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죠. 그날은 경기도 일산 사무실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아마 오전 10시쯤이었을 거에요. 뉴스를 틀어놓고 일을 하는데 세월호 사고가 보도되기 시작했죠. 뉴스를 듣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배가 조금씩 기울어가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나간 거였죠. 종일 일손이 전혀 잡히질 않았습니다. 방송 화면상에서 배가 완전히 뒤집힌 상태를 보고는 더는 배 안에서 살아있기 힘들 거라고 직감했습니다. 그때는 오보가 많았어요. 거의 다 구출됐다는 말도 있었고, 300명 이상의 학생이 배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뉴스도 있었어요. 뉴스 자체를 전혀 신뢰할 수 없었죠. 배가 완전히 가라앉고 나서야 정상적인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패닉에 빠졌을 거에요. 세월호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해경, 공무원, 정치인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각자 해야 할 일을 공정하게, 최소한 성실하게 수행했더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세월호 참사는 최소한의 공정함도 확보하지 못한 사회가 운명적으로 마주하는,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보는 거죠. 세월호가 중요한 건 이후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부패하고, 불공정하고,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렇게 된 것이죠. 시민단체 집행위원으로서 사회에 공정한 기반을 갖춰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세월호, 사고 아닌 사건...돈 우선 사회 안 돼”

쿠온출판사 경영 김승복(49, 일본 도쿄 거주)=“참사 당일, 도쿄 츠키시마의 회사 복도에 놓인 두 그루의 벤자민 나무에 물을 주다가 지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한국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영상이 TV에 계속 나온다. 김상네 가족은 안전한가.’ 가슴이 철렁했다. 배가 침몰한다는 말에, 내 고향 전라도라는 말에. 나는 2014년 10월 우석훈씨가 쓴 <내릴 수 없는 배> 일본어판을 서둘러 번역해 출판했다. 세월호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는 우씨의 말에 100% 공감했다. 세월호 침몰의 저변에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과제들의 집합체가 있다고 본다. 또 세월호 참사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어떤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전지구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어권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돈이 우선인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돈이 우선인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김건호·김용출·김지연·이동수·하정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