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백산 안희제 선생 순국 76년, 추모학술회의 국회의원 회관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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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9-04-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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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안희제와 국외독립운동기지 발해농장` 대주제

안민석 국회문화관광위원장과 민병두 국회정무위원장이 주최하고, 의령군이 후원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및 백산 안희제 선생 순국76주년 추모학술회의를 3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학술회의는 `백산 안희제와 국외독립운동기지 발해농장`을 대주제로 `백산 안희제의 생애와 독립운동`/이동언(전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 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소장) 기조강연과 제1주제는 `1930년대 북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박환(수원대 교수). 제2주제는 `발해농장의 현황과 독립운동유적지 보존방안`/김주용(원광대 교수), 제3주제는 `노블레스 오블리즈, 이회영과 안희제`/이정은(3ㆍ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등 3개 주제발표가 있다. 장세윤(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ㆍ권대웅(전 대경대 교수)ㆍ이명화(도산학회 회장)이 토론에 참가한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주목되는 점은 발해농장의 설치배경 및 과정과 현실태, 활용방안에 대해 서술한 김주용 교수의 논문이다.
 
백산 안희제는 발해농장을 운영하면서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함께 경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했다. 발해농장 준비 과정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실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시기적으로 일본제국주의가 가장 광폭적인 행동을 펼친 만주사변 이후에 발해농장을 설치했으며, 공간적으로 `발해왕국` 수도의 하나인 상경용천부가 자리했던 영안현 동경성에 `발해`농장을 설치한 것은 투쟁적인 민족운동의 정치(精致)한 발현이었다.

발해농장은 1933년 만들어진 이후 오늘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이 꿈꾸었던 독립과 지역공동체 실현의 이상은 1942년 임오교변으로 중단됐지만 결국 3년 뒤 해방이 됐으며 아직도 그곳에서 `땅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의 발해농장 건설이 결코 실패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발해농장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연구는 추후의 과제로 남기더라도 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발해농장 사무실을 전시관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것이며 둘째 홍보영상을 제작해 널리 알리고 나아가 `백산 안희제 루트`를 개발해 동북아시아 경제공동체와 평화공동체의 염원을 실현했으면 한다. 백산 안희제가 구상했던 미래 대한민국인들에게 던진 메시지였던 발해농장은 그 감동의 루트를 양국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승화시킨다면 한중 양국 공동 협력의 토대 구축에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창원일보 /김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