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탈세와의 전쟁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5-29 09:48
조회
50
국세청·관세청·검찰, 합동조사단 설치 잰걸음
부과제척기간 10년 연장, 부분세무조사 추진

정부가 결연한 각오로 역외탈세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은닉해 세금을 면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해치는 대표적인 반사회 행위이므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며 "국세청·관세청·검찰 등 관련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해외범죄수익 환수 합동조사단을 설치해 추적조사와 처벌, 범죄수익 환수까지 공조하는 방안을 강구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죠.

이는 최근 갑질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을 포함해 역외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대기업 사주 등 `사회 지도층`의 해외재산 은닉을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 대통령의 합동조사단 설치 지시 이후 정부의 후속조치도 빨라지고 있는데요. 검찰·국세청·관세청 등 3개 기관 실무자들은 지난주 2차례 만나 조사 범위와 방법 등 합동조사단 운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합동조사단에는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도 합류할 예정입니다. FIU는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해외송금 거래를 분석해 합동조사단에 전달하게 되는데요. 금융기관들로부터 의무적으로 제출받은 원화 1000만원, 미화 5000달러 이상의 모든 자금세탁 혐의거래 정보는 물론 그 이하 금액에 대해서도 임의제출을 받아 분석할 수 있어요.

# 역외탈세란

역외탈세(offshore tax evasion)란 납세자(개인이나 법인)가 국내가 아닌 국외(역외)의 조세피난처 등을 이용하여 탈세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조세회피처에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 후 국내외 소득 은닉 ▲가공거래를 통해 법인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후 유용 ▲해외 금융자산·부동산 미신고 등의 행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세청이 공개한 역외탈세 사례를 보면 해외 현지법인이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재산을 빼돌리거나 소득을 누락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A기업은 해외 현지법인인 B기업과 수출 계약을 체결한 뒤 정상적으로 제품을 공급했는데요. 하지만 B기업이 ‘제품 불량’을 이유로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면서 매출액이 상당 부분 줄었습니다. 알고 보니 A기업 사주가 탈세를 위해 B기업에 거짓으로 불만을 제기하라고 하고 깎아준 매출액을 빼돌려 해외에 숨겼다가 덜미를 잡혔습니다.

# 규모는

국제거래가 증가함에 따라 역외탈세도 증가하고 있는데요. 국세청에 따르면 2017년의 역외탈세 추징세액은 사상 최대인 1조3192억원(233건 조사)에 달합니다. 2008년 1503억원에 그쳤던 추징세액은 2013년 1조789억원(211건)으로 처음 1조원을 넘어선 뒤 2014년 1조2179억원(226건), 2015년 1조2861억원(223건), 2016년 1조3072억원(228건)을 기록했습니다.

(추징세액이 늘어난데 비례해 불복하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2013년 불복금액은 5825억원(54.0%), 2014년 8491억원(69.7%), 2015년 7422억원(57.7%)에 이어 작년에도 6890억원(52.7%)에 달했다.)

한편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8~2016년 9년간 국내 대기업이 케이만군도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처에 송금한 돈은 594조858억원(2017년 9월말 환율 기준)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국내로 돌아온 돈은 428조4518억원인데요. 아직 165조6340억원이 해외에 남아 있는 셈이죠.

(가브리엘 주크만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2016년 출간한 책 `국가의 잃어버린 부`에서 "2013년 현재 전 세계 가계금융자산의 8%가 조세회피처로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7300조원(5조8000억 유로)이나 된다. 조세회피처에 은닉된 금융자산으로 인해 `국가의 잃어버린 부` 즉 조세포탈액은 연간 164조원(1300억 유로)으로 추산했다.)

# 조사 대상은

국세청은 지난 5월2일 역외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39명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조사 대상자에는 대기업(법인)과 총수 일가, 일부 유명인도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조사 대상이 된 이들은 몰래 만든 해외 법인에서 번 소득을 숨기거나 해외 주식·부동산 양도 차익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국세청은 조사결과 탈세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세금을 추징하는 것은 물론 형사고발에도 나설 방침입니다. 또 변호사나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가들이 탈세 행위에 공모·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 공범으로 처벌하기로 했습니다.

역외탈세 혐의로 검찰과 국세청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는 기업으로는 한진과 OCI 등이 대표적입니다.

서울국세청은 최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등 5남매가 부친인 고(故) 조중훈 전 회장의 해외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상속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를 포착해 이를 검찰에 고발했죠.

이와 관련, 한진그룹은 해명자료를 통해 범 한진가 5남매 상속인들은 2002년 조중훈 창업주 별세 이후 상속세를 신고·납부했지만 2016년 4월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해외 상속분이 추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올해 1월 국세청에 상속세 수정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내야 할 상속세·가산세는 모두 852억원인데 1차년도분 192억원을 냈고, 나머지는 앞으로 5년간 분할 납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OCI 그룹도 역외탈세를 집중 조사하는 부서인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이번 조사는 5년마다 받는 정기 세무조사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국내 및 해외 관계사 뿐만 아니라 사주일가의 재산 증감 현황, 위장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 여부 등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지난 2013년 한 언론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 일부를 공개했는데 여기에 고(故) 이수영 OCI 회장의 이름도 있었죠.

# 막아라

국세청은 해마다 새로운 유형의 역외탈세 행위에 대처하기 위해 다자간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MCAA)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이미 MCAA를 통해 작년 9월 영국, 케이만 등 50여 개국과 최초로 금융 정보를 교환했으며 앞으로 금융정보 교환국 수를 100곳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국세청은 아울러 역외탈세자에 대한 세금부과 기간을 늘리고 세무조사 방식을 바꾸는 등 제도적인 정비에도 나설 방침입니다.

먼저 역외탈세 부과제척기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국세기본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현행 과소신고 5년, 무신고 7년을 모두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부과제척기간이란 국가가 국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정 기한으로, 제척기간이 만료되면 국가의 과세 부과 권한이 소멸됩니다. 앞서 지난 1월 국세청 적폐청산기구인 `국세행정 태스크포스(TF)`는 국세청에 역외탈세 부과제척기간을 과소신고 10년, 무신고 15년으로 연장하는 개혁안을 권고했습니다.

역외탈세는 탈세자가 부동산, 주식 등 해외 자산을 국내로 들여오는 시점에 탈세 혐의가 포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이미 제척기간이 임박 혹은 만료돼 과세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이유입니다. 실제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은 역외탈세 부과제척기간이 `무제한`입니다.

국세청은 또 역외탈세에 대한 원활한 세무조사를 위해 기획재정부에 국세기본법을 고쳐 부분(세무)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분조사는 일부 항목만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모든 세목을 일괄적으로 살펴보는 통합조사와는 다릅니다.

국세청은 현행법으로는 역외탈세 혐의가 있으면 통합조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단 부분조사를 벌인 뒤 필요시 통합조사를 하면 효과적으로 역외탈세 기업을 적발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세무조사는 중복조사가 금지돼 있어 통합조사를 2번 이상 할 수 없습니다만 부분조사를 하면 추가로 통합조사를 하는 게 가능합니다.

# 해법은

전규안 숭실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역외탈세를 줄이기 위해서는 세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첫째, 국세청의 지속적인 노력과 국제공조입니다. 국세청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역외탈세 추징세액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세청의 추징세액이 증가하는 것에 비례해 국세청을 상대로 한 조세불복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므로 국세청은 전문 인력 보강과 국제공조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죠.

둘째는 역외탈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탈세는 세금추징과 가산세 부과는 물론 그에 상응하는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성실납세 문화의 정착이 필요합니다. 성실납세 의식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간 거래에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하는데요. 성실납세가 궁극적으로는 절세가 된다는 인식이 국내외적으로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상원 기자, lsw@bizwatch.co.kr